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쓰자카 다이스케 (문단 편집) == 개요 == [[일본]]의 前 [[야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일본 전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야구, 그 국민적 대축제라 할 수 있는 고시엔에서의 압도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헤이세이의 괴물' 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프로 데뷔 이전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은 초특급 투수 유망주였다.[* 마쓰자카가 후술할 혹사 여파로 인한 충격적인 먹튀 행각으로 인해서 비판받기는 하지만, 그건 프로 오고 나서의 이야기고 고시엔 시절 마쓰자카는 미국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과 비교할 수준의 역대급 유망주였다. 물론 2000년대의 미국과 1990년대의 일본 야구의 수준차를 고려하면 스트라스버그와의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괴물의 칭호는 [[에가와 스구루]]가 원조격이며 마쓰자카를 거쳐 [[사사키 로키]]가 등장하며 레이와의 괴물로 이어 받게 된다. 다만 사사키는 순수 기량이 그야말로 괴물일 뿐 고시엔 활약상은 감독의 보호로 인해 마쓰자카에 비해선 미미했다.] 고시엔에서의 퍼포먼스로 인해 마쓰자카와 같은 동년배인 [[1980년]] [[4월 2일]]부터 [[1981년]] [[4월 1일]][* 일본은 3학기제로 인해 학기의 시작을 4월 1일에 한다.]사이에 태어난 야구선수라면 '마쓰자카 세대' 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하술할 인원들 외에도 [[무라타 슈이치]], [[스기우치 토시야]], [[후지카와 큐지]], [[나가카와 카츠히로]] 등의 명선수들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표현에 대해 [[와다 츠요시]]처럼 좋아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불만을 가진 선수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아라카키 나기사]]와 [[JFK(한신)|JFK]]로 활약했던 쿠보타 토모유키. 물론 저 둘도 은퇴후 말년의 마쓰자카를 보면서 그의 부활을 바라긴했다.] 직후 지명 1위로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8시즌 동안 204시합(190선발) 108승 60패 평균자책점 2.95, WHIP 1.14를 기록했으며. 특히 72완투(18완봉 포함) 완투율 38%라는 대단한 수치를 찍은 완투형 선발투수였다. 이를 바탕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해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2차례나 15승 이상을 기록하는 등의 족적을 남겼고, 이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를 거쳐 [[뉴욕 메츠]]에 몸담았다. 메이저리거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5년 일본프로야구로 복귀하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총액 12억엔을 받고 계약했으나 혹사 여파가 누적된 탓에 [[사이버 투수]]가 되며 3시즌 동안 불과 1경기만 등판하는 먹튀 행각을 보였다. 이후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해 간신히 재기에 성공했지만 다시 부상에 발목이 잡혔고, 결국 종착지가 된 친정팀 [[세이부 라이온즈]]에선 두 시즌 내내 등판하지 못하다가 2021 시즌 마지막에 간신히 은퇴 경기를 치르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별명은 마쓰퐁(マツポン), 마쓰(マツ), 다이스케(ダイスケ)이며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는 미국 미디어에서 'Dice-K', 'D-Mat'라고 자주 축약해서 표기하기도 한다.[* 본인은 사인할 때 D-Mat을 선호한다고 한다.] 한국에선 한자표기를 그대로 읽은 '송판'이나 '마작가' 혹은 '마쓰작가' 등의 별명이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는 일본 시절에 비해 구위로 압도하기 힘들어지고 컨트롤도 애매해진 관계로 늘어나는 투구수를 주체하지 못해서, 3회 정도만 되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는 이유로 '육수자카'라는 비칭도 붙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